조선시대 강진객사 ‘금릉관’ 위치․규모 밝혀져... 강진군민들 복원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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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진객사 ‘금릉관’ 위치․규모 밝혀져... 강진군민들 복원요구
  • 최용진 기자
  • 승인 2021.07.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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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사의 추정위치는 강진경찰서 일부와 뒤편 주차장으로 확인
- 금릉관 복원을 위한 경찰서 이전 군민토론회 개최...학술 연구용역 발주
조선사진엽서(1920년 경 촬영)강진읍 전경(가장 크고 긴 건물이 강진현 객사 금릉관)
조선사진엽서(1920년 경 촬영)강진읍 전경(가장 크고 긴 건물이 강진현 객사 금릉관)

【강진=강산뉴스】 최용진 기자 =강진군에서는 ‘강진객사 금릉관 복원을 위한 경찰서 이전 군민토론회’가 지난 9일 금요일 강진신협 2층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강진객사 금릉관 복원을 위한 경찰서 이전 군민모임’ 주관으로 개최되었으며, 강진군청, 강진경찰서, 일반군민들이 참석하여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발표는 강진군 이재연 학예연구사가 ‘강진현 객사 금릉관’ 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으며, 토론은 문화재 전문위원이자 고건축 권위자인 조선대 건축학과 신웅주교수가 참여하여 진행되었다.

이 연구사는 발표에서 조선후기 ‘강진현지도’와 ‘호남읍지’, 1898년 일본인들이 만든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을 근거로 강진현 객사의 명칭은 ‘금릉관’이였다고 발표했으며, 일제가 만든 ‘지적원도’와 ‘조선사진엽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객사의 위치는 현 경찰서 일부와 태양광 주차장 인근이며, 그 규모는 15칸(정청 3칸, 동익헌 7칸, 서익헌 5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신웅주 교수는 “이 연구사의 발표 내용들은 매우 신빙성 있으며, 금릉의 별호가 객사의 건물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며, “조선사진엽서에 확인되는 금릉관은 정면이 아닌 배면(후면)의 모습일지라도 복원의 근거자료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판단되며,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객사와 동헌을 위시한 공해(公廨)의 배치 관계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근거자료를 더 확보한다면, 복원을 위한 초석을 닦는데 힘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 말했다.

조선사진엽서(1920년 경 촬영)강진경찰서 전경(경찰서 우측상단에 강진현 객사 금릉관이 보임)
조선사진엽서(1920년 경 촬영)강진경찰서 전경(경찰서 우측상단에 강진현 객사 금릉관이 보임)

행사를 주관한 군민모임은 지역신문에서 지난 5월 11일부터 3회에 걸쳐 강진현 객사에 대한 특집기사를 내보내면서 뜻이 있는 군민들이 모여 지난 6월 16일 첫 간담회를 갖고 결성을 결정하고 6월 30일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출범 후 강진경찰서를 찾아 주민들의 뜻을 전달했고, 이승옥 강진군수와 면담해 경찰서 이전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하면서 객사 확인을 위한 용역 발주를 건의했다. 또 군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으며 강진의 사회단체가 참여한 주민호소문을 신문에 게재하고 현수막 게첨 등을 통해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군민모임 공동대표들은 "강진경찰서 자리는 예전 강진군을 대표하는 금릉관이라는 객사가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적 유물을 보호 해야하는 것이 강진군민의 역할이며, 지역발전과 경찰서를 찾는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보다는 강진읍의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면서 “강진의 사회단체들과 군민들의 뜻을 모아 금릉관 복원과 경찰서 이전 신축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도록 군민운동으로 전개하기 위해 군민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하고 있다.

youngjin66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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