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벌교읍행정복지센터광장서 부용산 음악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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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행정복지센터광장서 부용산 음악회 개최
  • 최용진 기자
  • 승인 2019.06.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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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10일 읍민회 주관 작사자 박기동 선생 뜻 기리기 위해

【보성=강산뉴스】 최용진 기자 =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 노래는 박기동작사와 안성현 작곡의 작품으로 작사자인 박기동(1917~2004)선생은 1931년도에 벌교보통학교(현, 벌교초교)를 졸업하고 일본유학으로 대학 졸업 후 1943년 귀국과 동시에 현, 벌교초교 교사로 부임하여 4년간 봉직하고 벌교상업중학교에서 1년간 재직하는 등 벌교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애향과 애착을 가졌었다,

더구나 벌교로 시집 온 누이동생 박영애가 1947년 스물넷 꽂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자 벌교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그 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애절하고 서글픈 마음을 시로 적어 두게 되었다,

다음해 1948년 목포항도여중으로 전근되어 동료음악선생 안성현 교사를 만나 부용산의 시를 곡을 붙여 부용산이란 노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안성현 선생은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 내 고향 등을 작곡 했었다,

이 노래가 나오자마자 여수. 순천사건이 발생하여 산으로 쫒기던 이들이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노래가 되어 속칭 빨치산의 이름표에 붉은 밑줄이 그어져 안성현과박기동이 연좌에 묶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래는 금지곡이 되고 작곡을 한 안성현 선생은 다음해1949년9월에 의원면직을 하고 만다,

연이어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 후 안성현은 북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용산 노래는 봉인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박기동 선생은 안성현 선생이 북에 있는 관계로 1951년 교직을 그만두고 출판사 일을 시작했지만 수사당국의 감시와 수많은 연행과 구금으로 수난에 연속으로 시집한권도 출판하지 못한 채 76세가 되던 1993년도에 호주로 떠나야했던 벌교출신의 시인이자 부용산 노래의 작사자인 박기동 선생을 벌교읍민회 이형노 회장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읍민회 주관으로 선생의뜻을 조금이나마 기리기 위한 음악회를 오는 7월 10일 벌교읍행정복지센터광장에서 갖기로 했다,

또한 읍민회장은 부용산 가사에 “시상의 주 무대인 벌교의 부용산 노래를 원래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대로 돌려 놓아야할 책무는 우선 우리 벌교인의 몫”이다,면서 ‘우린 이 일을 해내야 한다.’면서 강한 애착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편 부용산 노래를 처음으로 푼 것은 안치환이 1997년에 낸 앨범에 작가 미상으로 나마 노래를 실었으며 가을편지의 가수 이동원이 음반에 취입. 세상에 부용산이란 노래가 다시 봉인을 풀고 연극과 함께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날 행사를 위해 벌교를 찾는 가수는 안치환을 비롯 미스트롯의 진 송가인씨가 참석하여 한 많은 대동강아 로 벌교읍민을 사로 잡을 걸로 믿고 있으며 채동선 합창단, 실내악단 등 다수의 성악가들이 출동한다,

youngjin66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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